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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건강식만 찾지 말고 건강한 정신을 추구하는건 어떨까? 등록일 2013.12.02 22:52
글쓴이 앞선넷 조회 494
어느날인가 필자는 이안 맥켈렌과 패트릭 스튜어트가 출연한 해롤드 핀터의 수작 연극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를 보러 나섰다. 같은 주에 안드라스 쉬프가 카네기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 리사이틀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모건라이브러리앤드뮤지엄에서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전시회도 감상했다. 문화적 관점에서 나름 신경쓴 셈이다.

그러나 당시 경험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날 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의 권유로 건강식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버섯 스프와 사탕무, 케일을 곁들인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러나 음식을 거의 삼킬수가 없었다. 눈 앞 식당벽을 장식한 그림은 사탕무가 독성 물질을 해독하고 케일이 기적의 음식이라고 설파하고 있었다. 이 식당은 샌드위치를 만들때마다 도마를 교체해 사용했다.

그 곳은 음식의 영양학적인 강점을 내세우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 식당 주인은 필자와 같은 고객의 반응을 마치 다음과 같이 비아냥 거리고 있는 듯 했다.

우리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과 요리법은 모두 건강식이다. 쓰레기같은 음식을 원한다면 근처에 있는 ‘레드롭스터’를 권한다. 이 게으름뱅이 악당같으니라구.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는 머리속에 섬유질이 잔뜩 든 건강식을 섭취하고 싶다. 셰익스피어나 브론테 자매의 소설, 베르메르의 예술품(네덜란드의 화가)으로 말이다.

스포츠 경기를 볼때를 제외하고는, 필자는 음식으로 치자면 트랜스지방과 같은 그러한 (저급) 프로그램으로 두뇌를 채우지 않는다. 이를테면 게임쇼, 토크쇼, 리얼리티TV쇼와 같은 프로그램 말이다.

필자가 관람하는 콘서트나 연극, 미술 전시회, 읽는 책들는 모두 그 나름대로 비트나 유기농 호박, 호두만큼이나 영양소가 풍부하다. 필자의 사고방식으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두뇌의 케일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건강식을 결코 좋아하지도, 좋아해 본적도 없다. 가장 건강에 유해한 음식으로 알려진 스크래플(잘게 썬 돼지고기, 야채, 옥수수 가루로 만든 튀김 요리)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도시에서 자란 탓일 수도 있다. 여러 해동안 필자는 그런 음식을 즐겨왔다. 굳이 건강식을 먹어야 한다면 약간의 꽃상추와 순무를 억지로 삼킬 것이다. 그러나 선택권이 있다면, 여전히 베이컨 더블 치즈버거와 밀크쉐이크, 잔뜩 쌓인 프렌치프라이를 택할 것이다. 필자가 자랐던 곳에서는 건강에 유해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존중의 표시였다.

사람들은 필자의 유해하고 무지막지한 식습관을 비난한다. 유기농 식품 매장이 바로 근방에 문을 연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비트의 항산화 효과가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냐고? 전혀. 참고로 알칼리 다이어트(알칼리 식품을 주식으로 하는 다이어트 방법)가 뭔지는 아냐고? 상상도 안 간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필자는 음식을 섭취하는 동안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교를 듣고 싶지 않다. 쩌낸 참치(하와이산 참치)의 영양학적 가치에 대해 꼬치꼬치 알고 싶지도 않다. 허브의 (효능에) 대해서도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당분간 필자는 육체적 건강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정신 건강에 더 크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김과 보리순을 곁들인 초록 파우더 스무디를 막 한잔했다”고 한 친구가 말하면, 필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바그너 작 오페라)를 막 감상했다”고 맞받아칠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사탕무의 해독 효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필자는 또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작 연극)’의 해독 효과를 사랑한다”고 응수할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논리는 타당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섭취하는 음식에 대해 매우 까다롭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두뇌로 유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방목한 닭 요리를 섭취하면서도, 교외지역에서 머리가 없는 귀신이 등장하는 저급 TV 쇼는 별 생각없이 본다.

그들은 파스닙(설탕 당근)은 한껏 섭취하지만, 피카소의 작품은 전혀 감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건강 보조 식품의 영양학적 효과는 알고 있으면서도 드뷔시의 음악은 절대 감상하지 않는다. 클라우드 드뷔시가 영양 보충제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필자의 방식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화기관이라는 것이 단지 신체의 한 부분일뿐 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필자를 편협한 전통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 부를테면 그렇게 불러라.

그러나 우리의 두뇌는 작은 내장만큼이나 중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비트, 토종 살구, 청정1급수에서 자란 송어를 먹는다고 해서 필자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누군가는 케일을 먹어치우고, 필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탐독한다. 이런 상황이 필자에게는 ‘조삼모사((朝三暮四), 당장의 차이에 신경 쓰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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