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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민국] 1968년 1월, DMZ 담넘다 미군에 제지당한 학생들 찾습니다 등록일 14-07-17
글쓴이 앞선넷 조회 149
"자유의 다리서 '북진통일' 시위 벌인 학생들 만나고 싶어"

1968년 1월 하순 어느 날 오전. 휴전선 일대에는 엄청난 긴장이 감돌았다.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1·21 사태'와 이틀 후 벌어진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제2전투공병대대 소속 데니스 클라인 중위는 지프를 타고 휴전선 근처 양주골을 지나고 있었다. 자유의 다리 근처 비무장지대(DMZ)의 벙커와 도로를 정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때 클라인 중위는 열차에서 막 쏟아져 나온 교복 차림의 남녀 학생들이 거리에서 대오를 이루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사건 관련 자료.

학생들은 검은 글씨로 구호가 새겨진 하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클라인 중위는 이를 보고 "귀엽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나 금세 잊어버리고 자유의 다리로 가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군 시설로 가서 점심을 했다.

그러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 약 200명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면서 도로에 나타나 북쪽 자유의 다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클라인 중위는 주방에서 일하던 한국인에게 "저 학생들이 도대체 뭘 하는 거냐"고 물었고, "1·21 사태를 저지른 북한을 규탄하면서 북진 통일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68년 DMZ 담 넘으려던 학생들 찾아 나선 미국인
68년 DMZ 담 넘으려던 학생들 찾아 나선 미국인 데니스 클라인 씨와 그의 동료 제임스 매컬로 씨.
 
그가 점심을 끝내고 자유의 다리로 가자 더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휴전선 방향으로 떼를 지어 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경계가 삼엄해 민간인들은 얼씬도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저지선이 뚫렸다.
 
클라인 중위가 DMZ 담 근처에 지프를 세웠을 때는 이미 학생 여러 명이 담을 넘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지뢰가 무더기로 매설돼 있어 학생들이 담을 넘으면 자칫 대형 참사가 날 상황이었다.

아찔해진 클라인 중위는 서둘러 동료 장병과 합세해 학생들을 담에서 끌어내렸다. 학생들은 제지를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미군은 이들을 억지로 트럭에 태워 자유의 다리 건너편으로 옮겼다. 이 소동은 약 20분간 지속됐다.

그는 소동이 마무리된 후 "당시 학생들은 DMZ를 넘어가 북한군을 도발해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북진 통일을 이루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희생돼도 좋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클라인 중위는 그 후 군복무를 마치고 민간인 생활로 돌아갔으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근교 밀밸리에서 지리정보시스템(GIS) 기업 '바운더리 솔루션스'(www.boundarysolutions.com)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한 사건을 일으켰던 남녀 학생들이 46년 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직접 만나서 들어 보고 싶어한다.

북진통일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죽어도 좋다는 학생들의 생각은 위험천만한 만용이고 그릇된 것이었지만, 당시 한국인들의 기백을 보여 주는 사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이 학생들을 찾아 나선 데는 전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던 미군 장교의 자부심이 깔려 있다.

당시 사건 관련 자료.
 
당시 주한미군이 전쟁 억지라는 제 역할을 훌륭히 해 냈다는 점을 알리고픈 마음이다.
 
클라인 씨는 "1968년은 정말 끔찍하고 끔찍한 해였다"며 암울했던 당시 세계정세를 회고했다. '프라하의 봄'은 소련군 침공으로 끝났고,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항의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 수백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미국에서는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유력 대통령 경선후보이던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이 암살됐다.

클라인 씨는 "하지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으니, 한국에서는 DMZ에서 북한의 압력이 커지고 있었는데도 한국 국민이 단결해 이를 버텨 냈다는 점"이라며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베트남 사태가 매우 악화하고 있을 때 우리가 한국군과 함께 흔들림 없이 전선을 지켜 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옛 신문을 찾아보면 클라인 씨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사건이 1968년 2월 7일에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소재 용문산 기드온 신학교와 고등성경학교의 학생, 교직원, 신도 등 400여명이 자유의 다리를 건너 원정 시위를 벌이고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DMZ에 진입하려다가 미군에 제지된 사건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군은 현장에 탱크까지 출동시켰고 제2사단 지원사령관 조지 로빈스 대령이 현장 지휘를 맡았다. 당시 장면을 촬영한 한국 기자들이 카메라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라인 씨는 자신이 겪은 사건이 2월 7일보다 훨씬 전인 1월 하순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탱크가 출동하지도 않았고, 로빈스 대령이라는 인물이나 취재진이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1월 하순에 내가 겪은 사건이 발생했고, 이어 2월 7일 같은 장소에서 기드온 신학교 주도의 시위가 또 벌어졌기 때문에 현장에 있던 미군이 강력히 대응했던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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