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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日 전범 나가토미 자백서, 위안소 설치해 성욕 해소 등록일 14-07-18
글쓴이 앞선넷 조회 158
중국 국가기록보관소(당안국) 웹사이트는 일본 전범 나가토미 히로유키(永富博之)가 중국 침략 당시 저지른 범죄 자백서를 16일 공개했다. 나가토미는 자백서에서 타이웨(太岳)산맥의 한 마을에서 중국 부녀자와 아이들 20명을 동굴에 밀어 넣고 불 질러 죽였으며, 훠(霍)현 보안대 지도관으로 근무할 때 “보안대 사병들을 여색에 빠지게 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도 공공연히 성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자백했다.

다음은 나가토미 히로유키가 중국 침략 당시에 저지른 범죄 행위를 자백한 내용이다.

1955년 2월에 작성한 친필 자백서에 따르면 나가토미 히로유키는 1916년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서 출생했다. 그는 1938년 중국 장쑤(江蘇)성 우장(吳江)현으로 군 원정대 선전분대원으로 파견되었다. 1945년 8월 일본군이 항복한 후 국민당 옌시산(閻錫山) 부대 보호 아래 있었다. 1949년 산시(山西)에서 포로로 잡혀있다가 1950년 12월 9일 체포되었다.

주요 범죄 행위:

1938년 1월, 일본 고쿠시칸대학(國士館)의 학생으로 난징(南京) 샤관(下關)에서 수만 구의 시체를 목격했다. 난징 샤관에서 강 가운데로 도망쳐 온 포로 1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1938년 4월, 장교들에게 시범 교육을 하기 위해 우장현에서 포로 1명을 일본도로 참수했고, 중국인 여성을 강간했다. 1주일 후 쑤저우에 다시 갔을 때 이 여성을 우장으로 데려가 일주일 내내 강간했다”.

1938년 11월, 안칭(安慶)에서 중국 여성 1명을 불러 내어 관청 안에서 강간했다. 또 다음 날 또 다른 중국인 집에서 소개한 중국 여성을 한 차례 강간했다. 12월 안칭성의 한 중국인 집에서 16살 된 소녀 XXX를 소개해 준 날 밤에 그녀를 강간했다.

1940년 10월, 쑤저우 우중(吳中)호텔에서 호텔 직원이 소개해 준 중국인 여성(연령 20세 전후)을 한 차례 강간했다.

1941년 5월, 신병 50명에게 ‘백병전’ 교육을 하기 위해 10m 떨어진 곳에 포로를 세워 놓고 돌격해 찌르도록 해 포로 한 명을 찔러 죽였다.

1942년 8월, 산시 원시(聞喜)현 소탕작전에서 중국인 공작대(매국노 부대)에게 명령해 길 안내를 거부하는 중국인을 총살하고 시체를 길가에 버렸다.

1942년 8월, 원시현 헝수이(橫水)진 둥하오좡(東郝莊) 수색 당시 잡힌 주민 5명을 헝수이진 북문 공지에서 일본도(日本刀)로 참수했다.

1942년 10월, 원시현 윈취안(雲泉)촌과 뉴좡(牛莊)촌 일대 수색 때에 잡힌 중국인 모두를 예리한 칼로 찔러 죽이거나 총으로 쏴 죽였다.

1942년 11월, 헝수이진 정보실에서 중국 대장장이가 만든 일본도가 참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원시현 소탕작전 당시 잡힌 진남(晉南)야전군 전사 3명을 헝수이진의 우물 근처에서 차례로 참수했다.

1942년 12월, 원시현 샤위커우(下峪口)촌에서 창으로 8명의 둔부를 마구 찔러 살해했다. 원시현 둥산디(東山底)촌에서 잡힌 주민 20여 명을 일본도와 절초도(切草刀)로 참살하고, 머리 두 구를 남문에 효수하여 대중의 본보기로 삼았다.

1943년 2월, 원시현 베이바이스(北白石)촌을 소탕할 때 잡은 주민 15명을 마을 북쪽의 구덩이에 몰아 넣고 총살했다. 또 같은 날 가이자이(蓋寨)촌에서 나의 명령을 받은 공작대(매국노)가 보총으로 9명을 총살하고 길을 안내하던 사람을 불 태워 죽였다.

1943년 10월~11월, 타이웨산맥에서 중국 주민 6명을 산정상에서 밀어 추락사 시켰다. 또 어느 마을에서 중국 부녀자와 어린이 20명을 동굴에 몰아 넣고 불태워 죽였다.

1944년 7월, 훠현 보안대 지도관으로 근무할 때 위안소를 설치했다. 위안소 설치 목적은 사병들이 여색에 마비되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나 자신도 동물적인 성욕을 공공연히 해소할 수 있었다.

1944년 12월, 훠현 리자산(李家山) 일대 소탕 시 마을 주민 3명을 잡아 심문했는데 이들이 아무 것도 발설하지 않아 사병에게 명령해 전부 살해하도록 했다. 시쉬(西許)촌에서 11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1945년 4월 보안대를 지휘해 잡은 포로 9명을 눈을 가리고 손을 묶어 총살했다.

주민 88명을 총살했고, 9명을 찔러 죽였으며, 2명을 생매장하고, 26명을 불태워 죽였다. 또 1명을 물에 익사시켰고, 6명을 추락사 시켰으며, 일본도나 절초도로 41명을 참살했다. 중앙군, 진남야전군, 항일전사 61명을 죽였다. 이는 나가토미가 일제 시기, 옌시산 시기, 해방 시기 및 모든 시기를 통틀어 저지른 범죄 행위 통계이다.

나가토미는 자백서에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이후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자신이 직접 살해한 중국인은 61명, 자신의 명령에 의해 살해된 중국인은 166명, 상부의 명령을 받고 명령을 내려 참살한 중국인은 41명이라고 자백했다.

또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 중 부녀자 강간 범죄는 7건(기혼자 5명, 미혼자 2명), 위안소를 설치해 일본군 및 보안대원에게 성욕을 충족시켜준 범죄는 3건(12명의 부녀자 공급), 자신이 강간한 중국인 여성은 18명(위안소 부녀 5명, 식당 여종업원 4명, 사창 8명, 하녀 1명)이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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