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부터 목청껏 울어 젖히는 매미떼와 함께, 해바라기(Helianthus annuus)는 여름을 상징하는 심볼 중 하나다. 그것은 하루도 빠짐 없이 태양의 이동경로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몸을 비튼다. 이는 `햇빛이 비치는 동안 최선을 다하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해바라기는 긴장을 풀고 다시 동쪽을 향한다. 다가오는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로마신화에는, 해바라기와 관련된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 바다의 신에게는 두 딸 `그리디`와 `우고시아`가 있었다. 이들은 해가 진 후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만 연못 가에서 놀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놀기에 정신이 팔려 해가 뜬 것도 모르고 놀았는데, 태양의 신 아폴로가 빛을 발하자 지금까지 보지 못한 황홀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언니는 자기만 아폴로의 환심을 사려고 `동생이 규율을 어겼다`고 모함을 했지만, 마음씨 나쁜 언니를 아폴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언니는 아홉 날 아홉 밤을 선 채로 그의 사랑을 애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발이 땅에 뿌리를 내려 한 그루 해바라기로 변해버렸다.
한편 우리의 김광섭 시인은 해바라기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洋洋)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白日)의 환상을 따라/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원광(圓光)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해바라기는 단지 햇빛에만 반응하는 것은 아니며, 몸 안에 내장되어 있는 생체시계(internal clock)에도 반응한다고 한다.
UC 데이비스의 하고프 아타미안과 스테이시 하머(식물생물학)는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기른 다음, 연구소 내의 배양실로 옮겼 심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고정된 방향으로만 불빛이 비치도록 조명을 설치했다. 그러자 해바라기는 며칠 동안 들판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하루 종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밤이 되면 고개를 원위치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해바라기가 단지 빛의 방향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보유한 생물학적 시계(biological clock)에도 반응한다는 것을 뜻한다.
"해바라기의 일주운동은 매우 미세하게 조정되는 과정(very fine-tuned process)이다. 이번 연구는 `해바라기의 몸 안에는 모종의 정보가 기억되어 있어, 매일 일정한 방향으로 일주운동을 하도록 조정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고 캐나다 마니토바 대학교의 마크 벨몬트 교수(식물생물학)는 논평했다. (벨몬트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타미안은 이번 연구결과를 이번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미국 식물생물학회(American Society of Plant Biologists) 연례회의 석상에서 발표했다. 그는 또한 이 자리에서 "줄기의 한쪽 면이 다른 쪽 면보다 빨리 성장할 때, 해바라기의 몸통이 비틀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예컨대 줄기의 서쪽면이 빨리 성장하면 해바라기의 몸통이 동쪽을 향해 비틀린다는 것이다.
아타미안이 이끄는 연구진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해바라기 줄기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유전자발현 패턴분석을 통해, 해바라기의 생체시계가 - 서쪽이 아니라 - 동쪽의 성장만을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농업적으로 중요한 작물들, 예컨대 콩, 면화, 알팔파 등도 일주기성 댄스(diurnal dance)를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같은 주광성(solar tracking)은 식물의 작황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입증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부지런하게 태양을 쫓던 해바라기가 종국에 가서는 이 같은 왈츠에 진절머리를 낸다는 것이다. 즉, 성숙한 해바라기는 햇빛 쫓기를 중단하고 뻣뻣이 서서, 종종 동쪽 하늘만을 바라보며 새로 떠오르는 태양을 목매어 기다린다고 한다. 출처 : http://www.nature.com/news/video-sunflowers-move-to-internal-rhythm-1.15548 (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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