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로부터 동남아와 인도에 걸쳐 분포하는 장수말벌은 몸길이 4.5㎝에 침 길이만 6㎜에 이르는 세계 최대 말벌이다. 이 말벌은 단단한 키틴질 외골격을 지녀 꿀벌의 침이 뚫을 수 없다. 일대일로 덤벼서는 장수말벌의 강력한 턱과 침 앞에 당할 재간이 없다. 재래말벌은 ‘인해전술’로 이에 대항한다

냄새와 시각적 단서를 통해 장수말벌의 습격을 인지한 꿀벌은 즉시 경계 페로몬을 분비해 ‘경계경보’를 발령한다. 일벌들은 일체 활동을 중단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다. 장수말벌이 벌통에 들어서면 400마리 가까운 꿀벌이 덤벼들어 장수말벌을 중심으로 둘러싸 곤충 계에서 독특한 ‘열 방어 꿀벌 공’을 형성한다.

공을 이룬 꿀벌들은 일제히 비행을 위한 근육을 고속으로 떨기 시작한다. 5분 안에 공 안의 온도는 46도까지 치솟는다. 장수말벌은 근처의 꿀벌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침으로 쏘면서 저항하지만 ‘꿀벌 공’을 뚫지는 못한다. 30분쯤 뒤 공이 열리고 그야말로 ‘쪄 죽은’ 장수말벌이 드러난다.

재래꿀벌도 피해가 작은 건 아니다. 공을 만든 꿀벌의 약 4분의 1인 100마리 가까이는 현장에서 장수말벌에 의해 죽는다. 나머지 대부분의 꿀벌은 무사해 보인다. 그러나 무사해 보이는 재래꿀벌도 큰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마구치 유타 일본 다마가와대 곤충학자 등 일본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 표식을 한 꿀벌에 대한 장수말벌의 습격을 조사했다. 방어에 나서는 꿀벌은 생후 15∼20일의 일벌이었다. ‘꿀벌 공’ 방어에 나서지 않은 꿀벌은 이후 16일을 더 살았지만, 방어에서 살아남은 꿀벌은 10일밖에 못 살았다.

연구자들은 수명이 현저하게 단축된 꿀벌은 뇌와 체지방에 열충격 단백질의 발현이 급증하는 생리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장수말벌뿐 아니라 방어에 나선 꿀벌도 고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보통 벌통의 온도는 32도이지만 ‘꿀벌 공’ 가운데는 46도까지 오른다. 장수말벌은 45도에서 죽는다. 꿀벌은 50도까지 버티지만 열 충격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실험 결과 꿀벌은 44도에서 열 충격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온도에서는 장수말벌을 죽이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꿀벌이 46도의 해로운 영향을 극복할 효과적인 생리 기구를 개발하지 못한 진화적 제약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흥미롭게도 열 공격에 나섰던 꿀벌은 공격적으로 바뀌어 장수말벌의 후속 공격에 앞장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공에서 가장 위험한 가장 안쪽에서 장수말벌을 에워싸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수명이 줄어든 일벌이 위험한 일에 나서 꿀벌 무리 전체로 본다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지는 셈이다. 수명이 단축된 꿀벌이 더 많이 살아남는다면 벌통이 겨울을 나기에 필요한 먹이 확보에 실패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장수말벌이 재래꿀벌에 얼마나 중요한 진화적 선택 압력인지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hani)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uta Yamaguchi et al, Double-edged heat: honeybee participation in a hot defensive bee ball reduces life expectancy with an increased likelihood of engaging in future defense, Behavioral Ecology and Sociobiology (2018) 72:123, https://doi.org/10.1007/s00265-018-2545-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