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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휠체어 인생’ 양봉으로 일어서다 등록일 2016.06.08 18:14
글쓴이 앞선넷 조회 514

사고로 장애 입은 송재선씨, 벌 1통 못 살만큼 가난했지만 이웃의 도움으로 양봉 시작

벌 관련 서적 읽고 연구 노력…매년 1.8ℓ 꿀 2천여병 생산

꽃을 따라 다니면서 양봉업을 하는 1급 지체장애인 송재선씨(69·칠곡군 약목면 무림2리). 그의 삶은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닮았다.

송씨는 23세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 3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그는 한 번만이라도 다시 걸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날부터 죽을 힘을 다해 걷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무수한 고통과 함께 13년이 흐를 즈음 몸에 반응이 왔다. 근육이 회복되면서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고 매일 반복한 걷기 연습 덕분에 한 시간에 100m 정도를 걸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일어서고 걷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감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이 송씨의 기억이다.

당시 그는 홀어머니와 살았는데, 휠체어를 살 수 없을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워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하면서 생활을 했다. 우연히 이웃 사람들이 벌을 친다는 소리를 듣고 벌 한 통을 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 포기했다. 이런 사정을 전해 들은 왜관 베네딕도 성당의 고(故) 임 세바스찬 신부가 그에게 일을 맡겼다. 원고 오·탈자를 찾는데, 책 한 권에 1만원을 받은 그는 얼마 후 벌 한 통을 구입해 양봉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1급 지체장애인도 열심히 노력하면 비장애인처럼 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벌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연구했다. 그의 노력에 감동을 한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벌통 수는 늘어갔다. 스스로 생활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모아둔 돈으로 휠체어를 구입했다.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어 갈 무렵 하늘 아래 전부였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과 발이 되어준 어머니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왜관성당 미카엘 수사의 중매로 아내 남종분씨(57)를 만났다. 아내와 함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양봉에 올인했고 100통이 넘는 벌통을 마련했다.

그는 양봉을 하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벌 박사’라고 불리는 김창수씨와 대구에 사는 이상봉씨의 도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양봉 철이 되면 그는 왜관에서 시작해 5월에는 영주시 순흥면, 경기도 연천, 6월에는 경남 하동으로 이동하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7월 초에 왜관으로 돌아오면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는 1년에 1.8ℓ짜리 2천여 병의 꿀을 생산해 가톨릭 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 납품도 하고, 주문을 받아 판매도 한다. “꿀이면 다 꿀이냐, 꿀이라야 꿀이지”라는 생각으로 꿀 농사를 짓는 그는 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내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아내는 초등학교만 나온 것이 한이 돼 주경야독으로 지난 4월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지금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컴퓨터를 통해 독학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양봉을 하면서 자연이 가져다주는 혜택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송재선씨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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